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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었지만 끝까지 버텨봤던 시간

by kean486 2026. 1. 27.

도망치고 싶었지만 끝까지 버텨봤던 시간

도망치고 싶었지만 끝까지 버텨봤던 시간
도망치고 싶었지만 끝까지 버텨봤던 시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르던 시기

그때의 나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지쳐 있었다. 눈을 뜨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오늘도 가야 하나”였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라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냥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바람이었다. 아무도 나를 붙잡고 있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던 이유는 하나로 설명되지 않았다. 일이 힘들어서이기도 했고, 관계가 부담스러워서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점점 나 자신을 잃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할 수 있던 일들이 점점 버겁게 느껴졌고, 작은 실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자주 ‘그만두는 상상’을 했다. 만약 지금 이만두면 얼마나 가벼워질까,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편할까 같은 생각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막상 도망칠 수 있는 선택지가 눈앞에 있어도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책임 때문이라고 말하면 그럴듯하지만, 사실은 두려움에 더 가까웠다. 여기서 도망치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또 다른 자리에서도 똑같이 도망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나는 매일 마음속으로는 수십 번씩 도망치면서도, 현실에서는 같은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그 시기의 나는 늘 한계에 가까운 상태였다. 웃어야 할 때 웃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도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성실하다고 봤을지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는 그저 무너질 틈을 찾지 못해 버티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많이 지쳐 있다는 신호였다는 걸 그때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버틴다는 말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시간들

버틴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었다. 그건 매일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오늘도 도망치지 않기로, 오늘도 일단 버텨보기로. 그 선택은 결코 멋있지 않았고,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느끼게 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일같이 나를 소모시키는 선택에 가까웠다.

버티는 동안의 나는 아주 예민해져 있었다. 사소한 말에도 쉽게 상처받았고, 작은 일에도 감정이 크게 요동쳤다. 그러면서도 그런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더 애썼다. 힘들다는 말을 하면 약해 보일까 봐,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 무책임해 보일까 봐. 그래서 더 혼자가 되었다. 버티는 시간은 늘 외로움과 함께였다.

그 시기에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이게 정말 나에게 맞는 길일까’, ‘지금의 버팀이 나중에 의미가 있을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질문을 멈출 수는 없었다. 답을 찾기보다는, 스스로를 설득하기 위해 질문을 반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아주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를 또 살아내는 모습까지. 예전에는 몰랐던 나의 약한 부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동시에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부분도 발견했다. 나는 늘 강해져야만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주 약한 상태로도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버티는 시간은 나를 성장시키기보다는, 나를 드러내는 시간에 가까웠다. 잘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어떻게든 견디는 사람이었다. 그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모습 또한 나의 진짜 얼굴 중 하나였다.

끝까지 버텨본 뒤에야 알게 된 것들

그 시간을 끝까지 버텨냈다고 해서 인생이 극적으로 바뀐 건 아니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지지도 않았고, 버틴 보상처럼 눈에 띄는 결과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변화는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버티는 나’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전까지의 나는 버틴다는 걸 애매한 상태로 여겼다. 그만두지도, 완전히 성공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선택처럼 느꼈다. 하지만 끝까지 버텨본 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버틴다는 건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그 시간 동안 나는 나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또 하나 달라진 건,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대하는 태도였다. 예전에는 그런 마음이 들면 스스로를 비난했다. ‘왜 이렇게 약하지’, ‘왜 남들처럼 못 버티지’. 하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 지금 내가 많이 지쳐 있구나. 아, 이 상황이 나에게 꽤 무겁구나. 그렇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선택을 훨씬 신중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간을 버텨낸 덕분에, 나는 ‘언제 도망쳐도 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끝까지 버틴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는 무작정 도망치는 것과 충분히 버틴 뒤에 내려놓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도망침과 선택은 다르다는 걸, 그 시간을 통해 배웠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끝까지 버텨봤던 그 시간은 여전히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 시간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그때의 나는 최선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고 있었고, 그게 바로 버틴다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그 시절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도망치고 싶었던 너도, 끝까지 버텨낸 너도 모두 너였고, 둘 다 충분히 잘 해냈다”고.